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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8. 8世 〉3. <부정공>통훈대부인천군수공선교랑공양세휘목휘선종(通訓大夫公宣敎郎公兩世事實小識)
1. 문헌 목록 〉8. 8世 〉5. <부정공>두문공휘경묘표(杜門公諱瓊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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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정공>선약장군충무위부사직공묘갈명(宣略將軍忠武衛副司直公墓碣銘)
宣略將軍忠武衛副司直公墓碣銘 公諱和姓趙氏系出玉川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諱璋之后也三傳諱元吉號農隱封玉川君諡忠 獻諱瑜號虔谷官副正諱斯文官吏議宴公高曾祖三世也考諱智崑井邑縣監四昆季同處一亭式相 好矣妣令人南原梁氏參判敬老女公生有異質恪守先訓擬以六德六行六藝自能其事又曰移孝爲 忠固臣子之分也餘力學文兼以講武及冠奄遭内艱致哀盡禮 宣陵癸丑筮仕階宣略將軍忠武衛副司直僅再踰年當燕山政亂見忤於時歸老于家惟孝親友兄弟勉修家政及居外憂以善居喪聞每 當歲時宗族會則惇倫悦話敬吿于衆曰忠孝勤儉吾家世傳處官如家各修其職閨門若朝廷以王叔 恬之慄如萬石君之質行爲終身服膺母忝爲吾家父祖之子孫也此公行治之大略也屢經兵燹文獻 湮沒生卒年月幷無傳葬順天住巖面飛龍村後鵲峯右麓手掌嶝癸坐配令人光山金氏大將軍應昂 女墓雙墳三男蓋臣承義副尉純臣介臣司憲府監察五女梁應茂忠順衛柳昌祖忠義衛晋碩佐金黙 柳浚忠義衛也副出男夢臣夢孫一女幼長房男貞老德老幷參奉女金垣金慶男二房男期老參奉女 尹希祥三房男大承縣監大胤女許進士淹長壻无育柳滸二婿出晋繼楊晋繼男晋繼賢三婿出金彦 忠許沼柳仁顯妻四婿出柳潤榮五婿出曾玄不盡錄後孫龍其以其大人所撰狀來謁隧道之文固辭 不獲遂依狀略叙系之銘曰 嗟公六行率由天性講文業武文藝中正移孝事君謂當盡忠適丁昏朝 色擧歸鄉惟孝友于本立道生兵燹經久文佚難詳天道福善後嗣熾昌我撮其槩揭此銘章 戊戌重陽 月城 崔元植 撰 선약장군충무위부사직공 묘갈명(宣略將軍忠武衛副司直公墓碣銘) 공의 휘는 화(和)요, 성은 조씨이며, 옥천인으로 고려 광록대부 검교대장군(光祿大夫檢校大將軍) 휘 장(璋)의 후손이다. 휘 원길(元吉)의 호는 농은(農隱)이요 옥천군으로 시호는 충헌(忠獻)이며 휘 유(瑜)의 호는 건곡(虔谷)으로 벼슬은 부정이고 휘 사문(斯文)의 벼슬은 이조참의인데 공의 고증조 三세이다. 考의 휘는 지곤(智崑)이며, 정읍현감인데 四형제가 한 정자에 거처하고 서로 담락하였으며 배는 영인(令人) 남원양씨(南原梁氏)로 참판(參判) 경로(敬老)의 딸이었다. 공은 나면서부터 남다른 기질이 있어 지성껏 선훈을 지키고 ①육덕(六德) ②육행(六行) 육예(六藝)에 능하였다. 또 말하기를 「효도를 옮겨 충성하는 것이 진실로 신자의 직분이다.」 하여 남은 힘으로 글을 배우고 겸하여 무를 강하였다. 성인이 되어 문득 모친상을 당하여 애통해하며 예제를 다하고 성종(成宗) 계축년(一 四九三)에 초사(初仕)하여 선약장군 충무위부사직 품계에 있다가 겨우 三년을 지내고 연산군(燕山君)의 어지러운 정치를 만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지내 며 오직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하며 치가를 힘쓰고 부친상을 당하여 착실히 거상한다는 이름이 있었다. 매양 연말 종회 때를 당하면 두터운 윤기와 즐거운 말로 경건하게 청중에게 고하되 「충효와 근검은 우리 집의 세훈이니 관직에 있으면서 집에 있는 것 같이 각기 그 직책을 닦아 가문이 조정같이 왕숙염(王叔恬)의 근엄으로써 만석군(萬石君)의 질행(質行)을 몸이 다하도록 가슴에 간직한다면 우리 집 부조(父祖)를 욕되게 아니할 자손이 될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공의 조행과 치가의 대략이었다. 자주 병화를 겪어 문헌이 인몰하여 생졸년월일 전하지 않고 순천 주암면 비룡촌(飛 龍村)뒤 작봉(鵲峯) 오른쪽 기슭 수장등계좌(手掌嶝癸坐)에 안장하였다. 배 영인(令人) 광산김씨(光山金氏)는 대장군(大將軍) 응앙(應昂)의 딸로 묘소는 쌍분이다. 아들은 셋인데 신신(藎臣)은 승의부위(承義副尉)요, 순신(純臣)이며, 개신(介臣)은 사헌부 감찰이고 五녀는 충순위(忠順衛) 양응무(梁應茂), 충의위(忠義衛) 유창조(柳昌祖)·진석좌(晋碩佐)·김묵(金黙), 충의위 유준(柳浚)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부출남(副出男) 아들 몽신(夢臣)·몽손(夢孫)이요, 장방남은 정노(貞老)·덕노(德老)인데 모두 참봉이며, 딸은 김원(金垣)·김경남(金慶男)이고, 二방남 기노(期老)는 참봉이요, 딸은 윤희상(尹希祥)이며, 三방남 대승(大承)은 현감이요, 대윤(大胤)이며 딸은 진사 허엄(許淹)이었으며 증손 현손은 다 기록하지 않는다. 후손(後孫) 용기(龍基)가 그 대인 소찬장문을 가지고 와서 묘도 문자를 청하므로 사 양하다가 할 수 없어 장문에 의하여 대략 서술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슬프다! 공의 六행은 다 천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嗟公六行率由天性 문무를 겸하여 문예가 정중하고 講文業武文藝中正 효도를 옮겨 인군을 섬기면 마땅히 충성을 다할 것인데 移孝事君謂當盡忠 때마침 혼조를 만나 기미를 보고 고향에 돌아와 適丁昏朝色擧歸鄉 오직 효도와 우애로 근본을 세우니 도가 자란다. 惟孝友于本立道生 병화가 지난 지 오래니 문질이 자상하지 못하고 兵燹經久文佚難詳 천도가 복선하매 후손이 창성하네. 天道福善後嗣熾昌 내가 그 대강을 엮어 이 새긴 글을 거노라. 我撮其槩揭此銘章 월성(月城) 최원식(崔元植) 지음 註:①육덕(六德) ) 여섯 가지의 덕. 곧 지(知), 인(仁), 성(聖), 의(義), 충(忠), 화(和)를 말함. ②육행(六行):여섯 가지의 덕행, 곧 효(孝), 우(友), 목(睦), 인(婣:외척과 친함). 임(任:친구에 신의가 있음)' 휼(恤:빈민을 구제함). ③육예(六藝):고대 중국의 교육중 여섯 가지 과목,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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